‘’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섬 거느린 조도(鳥島) 조도에서 가장 긴 모래사장을 자랑하는 신전 해수욕장 전경. ■ “조도갈이” 상조도와 하조도로 나눠진 섬을 1997년 두 섬을 잇는 조도대교가 개통되면서 하나의 섬이 된 조도는 동서 7㎞, 남북 5㎞, 남북의 폭은 약 2.8㎞이고 면적 10.55㎢, 해안선 길이 38㎞ 에 가장 높은 산은 돈대산(234m)이다. 668가구에 124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변의 많 은 섬들이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어 풍랑이 거센 겨울에도 상·하조도 인근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해 각종 해조류 및 수산물 양식이 잘된다. 조도의 역사는 선사 시대로부터 추정되는데 하조도 신육리 읍구 동네 고개에 3기의 지석 묘와 유토 동네 앞에 선돌이 있고, 석기시대 유물도 출토되고 있다. 신육리 입구에는 고려 때 고분이 있고, 조선 중기에는 남도 만호진 별장이 배치됐으며, 정조 때는 면 소재지 창리 에 지역 해산물을 저장하는 조도창이 생긴 것만으로도 조도는 예전서부터 해산물이 많이 생 산했던 모양이다.
기록에 보면 조도는 옛날부터 바다에 ‘고기 반 물 반’이라 할 만큼 어종이 풍부했다. 육지 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오랫동안 범선으로 연안에서 고기잡이하며 살아가는 어선업자가 전 국적으로 가장 많았다고 한다. 해방 후 당시 면사무소 근무했던 박종수씨의 증언에 의하면, 조도에는 닻으로 고정한 배에서 그물을 이용한 어선인 닻배가 32척, 투망 51척, 중선(중형 어선) 10척 등 모두 100여척이 있을 정도로 어장이 풍성해 어선업자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시절도 있었단다. 이때 전국 항·포구 어디서나 ‘조도 갈 이! 조도 갈 이!’하고 부르는 소리 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이 말은 ‘조도에 갈 인력은 내 배에 같이 타고 가자’란 뜻이란다. 지 금도 신안, 목포, 해남, 완도 일대에서는 조도 사람들을 일컫는 별명처럼 쓰이고 있고, 조도 사람들은 어로기술이 뛰어나 전국 어디서나 조도 어부라면 전문가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 섬 사람들 삶의 냄새 물씬 도리산 전망대 올라 조도 일대 섬들을 촬영하고 상조도 끝자락에 있는 작은 어촌 마을에 들렸더니 마침 주민 몇 사람이 모여앉아 톳 작업을 하고 있다. 섬에서 사람들 일하는 모습 만나기가 여간 어려운데, 이번 겨울 첫 추위가 몰아쳐서 그런지 두툼한 옷을 입은 나이 많 은 할머니들이다. 부지런히 일하는데 방해가 될까 조심스럽게 셔터를 눌렀는데 소리를 듣고 “어디서 온 손님이요”하고 묻는다. “예 제주도에서 왔습니다” “참 멀리서 왔소. 조도에 볼 것이 많지요. 여기저기 천천히 보고 가시오” “예. 고맙습니다” 아주 짧은 몇 마디 대화 속 에 정겨움이 묻어난다. “밀감이라도 몇 개 드리고 올걸…”한참 마을을 벗어나서야 생각이 났다. 오후 배로 나가려면 시간이 있으니 길이 있는 곳이면 전부 들어가 본다는 마음으로 가다 돌기를 몇 차례, 육동 마을이다. 그리 멀지 않은 해안에 관매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갯 벌에는 아주머니 두 분이 낙지를 잡는지 부지런히 갯벌을 파헤치고 있다. “아주머니 저 섬 이 관매도지요” “예 관매도요. 저기 갈라요. 우리 보트 타면 금방 가요. 요금이 조금 비싸 지만. 여행 왔으면 낙지나 사 가시오. 싸게 드릴게” 갓 잡은 낙지를 보이며 사란다. 바쁘다 는 핑계를 하며 자리를 떴다. 작은 언덕을 오르니 하조도 으뜸 마을이라는 신전 마을, 뒤로 는 신금산 산줄기가 마을을 감싸 안고 그 앞에 아담한 모래사장이다. 조도에서 가장 긴 모 래사장으로 길이 1㎞ 정도의 신전 해수욕장이다. 모래질이 단단해 자동차가 다녀도 안 빠져 여름철이면 관광객들이 몰려온단다. 해안가 절벽 위에 세워진 하조도 등대.
■ 100년 역사 품은 하조도 등대 이렇게 섬을 돌다 보니 다시 면 소재지인 창리 마을로 돌아왔다. 사거리에 서면 우측은 조 도대교로, 직진하면 신전해수욕장, 좌측으론 등대 가는 길이다. 조도에 오면 등대는 꼭 가보 란 말이 있다. 하조도 등대까지는 약 4㎞, ‘어류포’에서 걸으면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해안 절벽 위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섬 끄트머리에 아담한 등대가 자리 잡고 있다. 등대 뒤 산으로 올라서면 멀리 서해와 남해 끝 바닷길을 연결하는 해상 교통 요충지 장죽수도(長 竹水道)가 보인다. 하조도 등대는 1909년 2월 일제가 조선을 수탈할 목적으로 세운 등대다. 이 주변 해역은 물살이 거칠게 몰아쳐 멸치잡이 어선들과 제주로 가는 여객선의 분기점이기 도 하다. 예전보다 어족자원이 줄어 뱃 수가 줄었지만 목포와 진도에서 나온 꽃게잡이, 멸 치잡이 배들이 불빛으로 밤을 훤히 밝힌단다. 그래서 안개가 짙을 때나 야간에 종종 충돌사 고가 잦은 해역이라 주변에 크고 작은 섬에도 무인등대가 설치되어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찾았던 조도, 주변 섬까지는 갈 수 없었지만, 섬 구석구석을 돌며 섬사 람들과 나눈 몇 마디가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상조도를 걷다 한 집 에서 마른 간자미에 술 한잔하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했던 그분을 기억하며 조도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