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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회면 용 산마을 출신 부자(父子) 박사의 탄생
임회면 용 산마을 출신 부자(父子) 박사의 탄생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3.08.2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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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에서 두 번째 높은 산 여귀산(457m)아래 20세대 30여명이 살고 있는 조그마한 용산마을에서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 박사학위를 취득 부자박사가 탄생되었다. 아버지 강재수씨는 10년 전 정치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금년 여름학기 학위식에서 그의 장남 석훈이는 우리나라사학의 명문 연세대학교에서 렘수면 무긴장소실과 신경인지기능의 관계 란 논문으로 의학박사학위를 받아 부자간 박사학위가정이 생겨났다. 또한 그의 둘째 아들 명훈은 제49회사법고시에 합격, 제39기 연수원교육을 이수하고 군 법무관(해군대위예편)으로 병역의무를 마친 후 현직검사로 재직 중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주 LA에 있는 UCLA(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대학 로스쿨국비유학생으로 선진국검찰행정의 질 높은 실무를 터득하기 위해 1년간 연수중이다.

 강재수와 그의 형제자매들이 박사학위를 취득하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손 그 어머님의 헌신적이고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는 일상이 이어져 왔는데 그녀는 비록 깊은 산골 여인이었지만 늘 상 도전적이고, 이성적으로 자녀들의 교육열이 대단하셨다. 어머니는 여귀산 아래 용산마을과는 비교적 가까운 죽림마을에서 용산 강(고 강길준)씨 문중 장남의 며느리로 시집을 온 후 위로는 두시부모님의 병 수발부터 춘궁기 허기진 배 고품을 움켜쥐고 미처 익지도 않은 풋보리를 먼저 베어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보릿고개를 힘겹게 이겨내면서 두 사람의 시동생, 두 시누이를 결혼 시켰는가 하면 1년 여나무 번이나 족히 되는 기제사로 조상을 섬겨가면서 두세 살 터울을 두고 일곱 남매를 기르고 가르치느라 철이 지나고 해가는 줄 모르는 채 손과 발이 부어터지고 피와 땀을 흘리며 살아온 찌든 가난을 숙명처럼 여기며 질박했던 가정을 꾸려오면서도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신념과 열정을 바친 결과는 결코 헛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우선 공직자가 된 둘째 아들이 부이사관으로 퇴임 후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까지 비록 경제적 도움은 제공할 수 없었지만 그러나 주식인 쌀을 비롯 손수농사지어 생산된 먹거리 일체를 고향마을 용산에서 서울로 수십 년간 조달해 자녀들에 대한 뒷바라지와 격려는 뒤 늦은 만학도에게 큰 용기와 힘이 되어주었으며, 그녀의 큰 딸 순심(임회석교박종만의 처)은 아들 원준을 직접 노동력의 경제적 뒷받침으로 일본 동경대학에 유학시켜 석‧박사 과정을 이수하고, 동 대학원에서 공학박사학위를 취득 지금은 국립대학 공과대학교수로, 둘째 딸 순예는 방송대학교 교육과학대학 청소년교육학사를, 육군 중령출신 막내 경수는 가천대학교에서 경찰안보학 박사학위를 취득 역시 현재 대학교수로 재임 중에 있다. 어머님슬하에 있는 4남3녀 중 둘째와 넷째 아들은 박사학위자이고, 손자와 외손자는 각각 의학박사와 공학박사이며 또 다른 손자 명훈은 제49회사법고시에 합격해서 현직 검사로, 손자며느리는 로펌 허브의 공동대표변호사로, 막내 경수의 아들 현은 국내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박사과정을 수학하기 위해 현재 미국에 유학중이다.

한편 그녀는 남다른 효성으로 조상을 섬겨 왔는데 지난 4월 윤달을 기해 300여년이 넘은 제10대조 할아버지 할머니 묘를 비롯해서 4대조에 이르기까지 모두 14기의 조상 묘에 전국 각지에 흩어져 지내는 후손들을 참여시켜 당신의 생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며, 종친들과 함께 각기 조상님들의 묘역에 묘 비석을 세우셨다. 비문에는 현재 용산마을과 소포에 있는 형제자매 등 문중회원 모두에게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비문은 고구려시대 명장 병마원수공 진주강시 시조이신 姜以式님의 기수파 사평공 전라남도 진도군 입도죠 위망의 자 극세 님 의 24세손 용산마을 길준의 장남 상수, 영길의 장남 제주도에 터를 잡은 준수, 정준의 장남 철수, 제2의 고향 소포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영표의 장남 우영, 영석의 장남 수영, 영두의 장남 완영 등 전 종친가의 대표세대 장손들 명의로 2023, 4, 23 묘비석 하단에 위 메시지를 음각하여 묘역을 정비하셨다.

 

하죽자님께서 용산마을에 시집오신 후 향년 98세가 되신 오늘까지 위로는 조상님의 선영을 받들고 두 분 시어른의 3년 상을 치러내신 장남가의 며느리로써 또한 자신의 분신 7남매의 어머니로써 평소소임을 다하기 위해 불철주야 애 쓰셨고, 자신은 정작 못 먹고, 못 입고., 허리협착증을 이겨내지 못해 활처럼 휘어버린 척추, 두 무릎관절염, 틀리치아 등 통증으로 일상의 고통에서헤어나지 못하면서도 근면과 절약으로 오직 자녀사랑의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정한수 떠 놓고 손바닥이 달도록 빌고 비는 일상을 지켜보면서 성장하고 자란 7남매들의 오늘이 결코 어머님의 열정에는 미치지 못하나 평생을 자식 사랑으로 헌신해 주신 은혜를 결코 잊지 않고 가슴에 새겨 오래도록 그 뜻을 간직하겠다는 다짐을 준다.

 

2023, 8, 28

예향진도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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