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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오지심(羞惡之心) - 부끄러워하는 마음 -
수오지심(羞惡之心) - 부끄러워하는 마음 -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3.09.2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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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군면 오일시 박영관

아니! 이렇게까지 낯이 두껍다니? 수오지심(羞惡之心)의 ‘수오(羞惡)’는 ‘부끄러워하다’라는 뜻이다. 즉, 수오지심은 인간이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을 뜻한다.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맹자(孟子,BC372∼BC289)가 제시한 사단(四端) 중 하나이다.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맹자는 공자의 뒤를 이어 유학(儒學)을 발전시킨 인물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이 선(善)하다고 보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였다. 맹자는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無羞惡之心非人也(무수오지심 비인야)]’라고 표현하기도 하였으며, ‘수오지심은 의로움의 시작이다[羞惡之心義之端也(수오지심 의지단야)]’라고 하여 사덕(四德) 중 하나인 의(義)가 수오지심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주장하였다.

 

수오지심은 인간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갈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수오지심은 또한 인간의 도덕적인 성장과 발전에도 관련이 있다. 양심의 목소리를 듣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에 따라 행동을 조절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적인 성숙과 성장을 이루는 핵심적인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끄러움을 아는 개인들이 모여 협력하고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면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다. 수오지심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도덕적인 책임과 의무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더 나은 사회를 구축하고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영감을 제공한다. 이러한 철학적인 용어를 이해하고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개인적인 성장과 사회적인 발전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길을 열어갈 수 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차마 다른 사람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인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 있다고 하여 성선설을 뒷받침하였다. 또한 불인인지심에 대한 근거로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네 가지의 마음’인 ‘사단(四端)’을 제시하였다. 사단에는 측은지심(惻隱之心 : 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 겸손히 사양할 줄 아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 :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이 있으며, 이것을 확장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가리키는 네 가지 덕성인 인(仁)·의(義)·예(禮)·지(智)의 사덕(四德)으로 발전하게 된다고 보았다.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이주연 저)라는 책에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인 염치가 결정적인 순간마다 사회와 공동체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도록 지켜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회를 지탱해온 염치마저 없어진 듯하다. 요즘 지도자는 부끄러움 없이 뻔뻔하다 보니 갈수록 얼굴은 두꺼워지고 있다. 관중(管仲)의 저서 『관자(管子)-목민편』에도 나라의 기강을 세우는 네 가지 벼리, 즉 사유(四維)를 제시한다. “예(禮), 의(義), 염(廉), 치(恥) 중 하나가 없으면 나라가 기울고, 둘이 없으면 위태롭게 되며, 셋이 없으면 근간이 뒤집어지고(전복·顚覆), 넷이 없으면 망해 다시 일으킬 수 없다(멸절·滅絶)”고 경고했다. 다산 정약용은 상소문에서 “예의염치 중 가장 중요한 덕목은 부끄러워함이다”고 지적했다.

후안무치(厚顔無恥)는 낯짝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으로 체면을 차릴 줄 모르고 창피함을 모르는 뻔뻔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후안(厚顔)은 두꺼운 얼굴이라는 뜻으로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경우를 이른다. 같은 뜻으로 철면피(鐵面皮), 강안(強顔), 파렴치(破廉恥), 염부지치(恬不知恥) 등이 있다.

 

인간은 모름지기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염치’를 잃었다. 아무리 막된 짓이나 말을 하고도 부끄러워하는 ‘수오지심’은 없어졌다. 맹자나 다산은 어떻게 판단할까? 후안무치의 사람들만 출세하여 잘 나가는 세상이 두렵다. ‘수오지심’이라는 단어는 진도 문화에서도 사라지고 있을까? 문화 창달로 예도(藝都)를 이끌어 가야 하는데, 비리로 선출된 사단법인의 단체장은 두꺼운 얼굴로 무엇을 할까? 뻔뻔하고 부끄럼이 없으니 추상같은 역사가 두렵지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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