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珍島郡 보배섬 文化藝術祭 第9回 珍島全國漢詩(紙上)白日場 개최
珍島郡 보배섬 文化藝術祭 第9回 珍島全國漢詩(紙上)白日場 개최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3.09.2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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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문화예술 특구인 藝鄕 珍島를 사랑하시는 全國 漢詩同好人과 詞伯 여러분의 健勝과 家庭의 鴻福을 祈願 합니다.

문화의 달 10월을 맞아 “珍島郡 보배섬 文化藝術祭”의 일환으로 “제9회珍島 전국漢詩(지상)白日場”을 아래와 같이 開催하오니 京鄕各地의 漢詩同好人과 詞伯 여러분의 參與와 玉稿를 부탁 드립니다.

금년에는 고려 조선조에 걸쳐 진도의 關門이며 文學樓亭으로 널리 알려진 碧波亭을 詩題로 하여 보배섬 진도의 명승처를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詩稿접수 및 마감

◦ 2023.09.13.(수).~10.12(목) 도착분에 한함

◦ 접수처 : (우-58920) 전남 진도군 진도읍 성동길 18(유림회관 사무실 내)

◦ 접수방법 : 우편접수 以外 不可(投稿詩箋 原本製冊)

◦ 합격자 발표 : 2023.10.25.(수) 이전 개별통지

◦ 시상식 : 2023.11.5.(일). 오전 10시(진도무형문화재전수관 강당)

  문 의  : 010-4181-2839 ( 박정석)

 

詩題 및 作詩안내

◦ 詩題 : “옛(古) 珍島關門 碧波亭

◦ 押韻 : [尤]=州 樓 愁 留 遊

◦ 考選基準 : 한국 한시협회 고선기준 준용

◦ 考選試官 : 斯界 大家 초빙

3. 시상안내

◦시상내역(총 상금 : 9.500.000원, 수상자 59인)

◦장원 1명 : 상장 및 부상 1,000,000(전남도지사 상)

◦차상 1명 : 상장 및 부상 700,000(진도군수 상)

◦차하 2명 : 상장 및 부상 500,000(진도군의회 의장 상)

◦참방 15명 : 상장 및 부상 200,000(사)(한시협회 진도지회장상)

◦가작 30명 : 상장 및 부상 100,000(진도문화원장상)

◦장려상 10명 : 상장 및 부상 80,000(진도향교전교상)

◦장원, 차상, 차하, 수상자는 필히 시상식에 참석함을 원칙으로 하며 복장은

도포에 儒巾을 착용한다.

◦불참시 수상포기로 인정 상금은 주최측에 귀속함.

◦참방, 가작 상금은 시상식후 개별 계좌에 입금 예정임.

◦참방, 가작 상장은 시책 발송시 동봉함.

 

4. 作詩 참고자료

가. 진도는 한반도 서남단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경승(景勝)이 아름답고 드넓은 바다와 땅이 기름져 보배의 섬이라 진도(珍島)라 불리고 땅이 기름져 옥주(沃州)라는 별호(別號)가 있다. 천혜의 요새로서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수많은 외침(外侵)을 받아 전화(戰禍)의 상처가 깊은 곳이기도 하다.

 

나. 진도의 관문인 벽파나루가 있는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있는 벽파정(碧波亭)은 고려 희종(熙宗) 3년(1207)에 중국을 왕래하는 국제적 사절을 위로하기 위하여 창건한 정자이다. 이후 오랜 세월에 퇴락하여 조선조 세조 11년(1465)에 박후생(朴厚生) 군수가 중건하였다. 이후 다시 무너져 있었는데 최근 2016년에야 진도군에서 다시 중창(重創)하여 옛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다. 진도는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유배(流配)의 섬으로 사대부들의 문물이 그대로 많은 영향을 받아 흔히 진도의 문화는 유배 문화라고도 한다, 고려시대와 조선조에 진도로 유배 온 유배자는 왕족과 정승은 물론 고관대작들이 당시 정변에 휩쓸려 중죄인(重罪人)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한양과 멀리 떨어져 있는 서남단 진도로 유배를 왔다. 유배자의 가족들도 함께 진도 관문 벽파정(碧波亭)에서 혈루이별(血淚離別)을 하던 한(恨)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라. 진도 벽파정(碧波亭)은 중앙 조정의 정변(政變)에 따라 반역(反逆)으로 몰려 억울한 죄인이 되어 많은 유배자(流配者)가 들어오기도 하고 또한 억울하게 유배생활을 하다가 유배가 풀려 한양으로 떠나면서 악몽 같았던 유배생활을 벽파정 기둥을 안고 통한(痛恨)의 시(詩)를 읊기도 했다,

진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복권되지 못하고 한평생을 진도에 살다가

유명을 달리한 유배자도 많았다는 사료(史料)도 남아있다.

 

마 .특히 고려와 조선조에 이르러 벽파정은 많은 시인묵객들이 오가며 진도의 풍광과 삶을 시로 남겨 문학루정(文學樓亭)으로도 널리 알려진 곳

이다. 고려조 이래로 국제사절 뿐만 아니라 진도로 들어오고 떠나는 관료들과 유배객들의 애환이 담긴 훌륭한 가작(佳作) 시(詩)들이 역사자료에 남아있어 현재 중창(重創)되어있는 벽파정 누각(樓閣)의 벽면(壁面)에 일부 판각(板刻)하여 현판으로 걸려있다.

 

바. 또 이곳 벽파진(碧波津)의 지나간 자취를 말한다면 고려 원종때 몽고의 침략으로 삼별초 배중손(裵仲孫) 등이 강화도에서 내려와 벽파진에 인접한 용장성(龍藏城)에서 항몽전(抗蒙戰)을 펴던 곳이었으며, 조선조 정유재란 때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은 이곳 벽파진에 16일 동안 머물다가 우수영으로 진을 옮기자 그다음 날 명량해협에서 사즉생(死則生)의 결의로 12척 남은 배로 330척의 적선을 통쾌하게 물리치니 만고(萬古)에 길이 빛날 명량대첩지(鳴梁大捷地)임이 예와 지금의 역사 기록에 남아있다.

사. 이 정자는 떠나는 이와 머무는 이가 헤어질 즈음에 울적하게 서로 헤어지는 감정을 한 사람은 배에 타고 한 사람은 섬에 남아서 서로 바라보며 초연한 마음이 콧등을 시큰거리게 하여 흐르는 눈물을 막기 어려웠던 이정(離亭)이기도 하였다. 진도관문 벽파나루는 바다 건너 해남 옥동에서 진도 벽파진으로 도선(渡船) 하는 데 명량해협을 나룻배로 노를 저어 건너오려면 세찬 물살을 가르고 때로는 풍랑으로 풍전등화와 같은 위험 속에 건너오기도 했다.

 

아. 지금은 진도관문이 해남 우수영과 진도 녹진 사이에 쌍 육교가 건설되어 이제 진도는 섬이 아닌 섬으로 육로 교통 전용으로 수많은 외지 차량들이 줄지어 쉼 없이 물동량을 수송하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사계절 진도 해상 절경과 산고(山高) 수려(秀麗)한 절치(絶致)를 감상하며 시(詩) 서(書) 화(畵) 창(唱) 가무(歌舞)의 전통문화예술의 보고(寶庫)를 직접 체험하며 즐기면서 옛 시절 진도의 관문 벽파나루를 돌아보며 새로 지은 벽파정의 산뜻한 모습에 찬사를 보낸다.

 

 

주최/주관 : 사) 한국 한시협회 진도지회(hp. 010-4181-2839)

※ 후 원 : 진도군. 진도군의회. 진도문화원. 진도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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