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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관컬럼-「벽파정」을 찾아서
박영관컬럼-「벽파정」을 찾아서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3.12.02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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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의 유래를 생각하며 -

                                                                                                  고군면 오일시 박영관

길을 지나다 보면 옷매무새가 빠르게 바뀌어 감을 실감한다. 잎새는 신록이 짙어지더니 그을려 분홍빛을 더해간다. 마음이 울적하여 벽파진(碧波津)을 찾았다. 벽파진은 753년 전 삼별초와 426년 전 명량대첩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또한 유배인과 친지들의 만남과 이별의 장소였다. 진도대교가 건설되기 전까지는 진도의 관문이었다.

벽파진은 배중손(裵仲孫, ?∼1271) 장군과 삼별초 병사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과 휘하 장병들, 무수한 인물이 만남과 이별, 통한(痛恨)의 장소였다. 시름에 젖어 한시 한 수를 읊어 본다.

 

古珍島關門碧波亭(고진도관문벽파정)

梅軒(매헌) 朴英寬(박영관) 吟(음)

秀麗風光訪沃州(수려풍광방옥주) 수려한 풍광 찾아 진도에 이르니

相逢別淚考波樓(상봉별루고파루) 만남과 이별의 눈물 벽파루에서 상고하네.

抗蒙三別死生恨(항몽삼별사생한) 삼별초의 항몽은 죽음과 삶의 한이고

倭亂鳴梁俗世愁(왜란명량속세수) 임진왜란의 명량대첩 속세의 시름이네.

畫唱驪歌文士集(화창려가문사집) 그림과 노래의 송별가로 문사가 모이고

詩書曲調樂工留(시서곡조악공류) 시서의 가락으로 악공이 머무네.

湖南一景關門醉(호남일경관문취) 호남 일경의 관문에 취해

寶庫名區萬客遊(보고명구만객유) 보고의 명구에서 만객이 즐기네.

 

벽파정 

10월 9일은 ‘한글날’인데 그 유래를 살펴보기로 한다. ‘한글’은 세종대왕(世宗大王:1397∼1450)이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창제한 문자인 『훈민정음(訓民正音:창제 1443년, 반포 1446년)』을 달리 부르는 말이다. ‘한글날’ 기념식을 처음으로 거행한 것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후 480년이 지난 1926년 11월 4일이다. 음력 9월에 『훈민정음』을 책자로 완성했다는 실록의 기록을 근거로 음력 9월 29일을 반포한 날로 여겨 ‘가갸날’로 기념식을 거행했다. ‘한글’은 ‘정음’, ‘언문’, ‘국문’, ‘가갸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우리말과 우리글은 갑오경장(1894∼1896) 이후 ‘국어’, ‘국문’으로 불리었으나 1910년 국권이 상실된 이후에는 우리말을 쓸 수 없었다. 이런 사정으로 최남선(崔南善, 1890∼1957), 주시경(周時經, 1876∼1914) 등이 1910년에 ‘국어’, ‘국문’, ‘언문(諺文)’이나 ‘조선문자(朝鮮文字)’ 대신에 ‘한나라말’과 ‘한나라글’이란 말을 만들어 썼으며 그 후 ‘한나라말’을 줄인 ‘한말’, 우리 겨레의 말글이란 뜻의 ‘배달말글’이란 용어를 사용하다가 1913년부터 ‘한글’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한글’의 ‘한’은 우리 겨레를 가리키는 ‘한(韓)’ 외에 ‘대(大)’의 뜻도 지닌 말로 직접적으로는 ‘대한제국(大韓帝國)’의 ‘한(韓)’과 연관되고 멀리는 ‘삼한(三韓)’의 ‘한(韓)’과도 연관된다. ‘으뜸이 되는 큰 글’, ‘오직 하나뿐인 큰 글’, ‘한국인의 글자’라는 의미도 포함된다.

1927년 동인지 『한글』이 간행되고 ‘가갸날’이라고 부르다 차차 ‘한글날’로 불리면서, ‘한글’이 우리 문자의 이름으로 보편화되었다.

1928년 비로소 지금의 ‘한글날’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1446년 음력 9월 29일이 양력으로 어느 날에 해당하는지를 계산하여 1931∼1932년 무렵부터 양력 10월 29일에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그런데 ‘한글날’의 양력 계산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율리우스력에 따르면 10월 29일이지만, 양력은 1582년 이후 그레고리력으로 바뀌었으므로 ‘한글날’도 그레고리력으로 해서 1934년부터는 10월 28일에 ‘한글날’ 기념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1940년 7월에 발견된 『훈민정음』「해례본」 정인지의 서문에 9월 상한(上澣)이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 기록에 따라 9월 상한, 즉 상순(上旬)에 반포된 것으로 보고 9월 상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계산하였다. 그래서 1945년부터는 10월 9일에 기념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1949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을 처음 제정할 때부터 ‘한글날’은 공휴일로 지정되어 그 뜻을 기리는 날이다. ‘한글날’은 1991∼2012년까지 22년 동안 공휴일이 아니었지만, 2013년부터 다시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한글날’은 대한민국의 5대 국경일이다.

‘한글’은 세계의 여러 말 중 으뜸가는 글이다. 아름다운 우리글을 배우고 익혀, 그 뜻을 널리 펴 긍지 높은 문화의 꽃을 피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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