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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새아침 매헌 박영관 칼럼
새해 새아침 매헌 박영관 칼럼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4.01.0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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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새 아침

날로 새롭고 날마다 좋은 날 -

                                                                                                   고군면 오일시 박영관

동지가 코앞을 홀연하게 지났다. 어느새 계묘년이 저물고 갑진년 새해가 왔다. 해마다 새해 새 아침엔 저마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희망을 품는다. 지난해 무엇을 했는가? 바쁘게 살아오면서, 다짐한 약속은 지켰는가? 세상을 위해 작은 무엇이라도 했는가? 사람들은 한 해 한 해 속고 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일에 대한 희망, 미래에 대한 꿈이 없다면 사람들의 삶은 처연해질 수 있다. 묵은해의 아쉬움을 씻고, 갓 태어난 마음으로 갑진년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세월에 속더라도, 내일에 대한 희망, 미래를 기약하는 꿈이 있다. 인간은 꿈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죽는 순간까지도 죽을 줄 모르고 꿈을 안고 간다. 새 아침이 오면 분홍빛 꿈을 머릿속에 그린다.

삶의 어려운 고비마다 희망과 꿈이라고 하는 진정제가, 아픔을 잊게 해주는 마취제 구실을 한다. 새해에도 힘들고 어려운 일, 아픔들이 우리를 기다리겠지만, 여러 일을 계획하고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 진실로 나날이 새로워지고 하루하루 새로워지며, 또 날로 새로워지라”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 날로 새롭고 또, 날로 새로워짐”이라는 말로 약해서 사용해 왔다. 이 말은 탕왕[湯王, 기원전 ?∼기원전 1589, 상(商)나라 초대 왕]의 세숫대야에 새겨진 글이었다. 이를 탕지반명(湯之盤銘)이라고 한다. 탕왕은 왜, 이글을 그의 세숫대야에 새겨 넣었을까? 그것은 하나라(夏, 기원전 2070?∼기원전 1600?)를 멸망의 길로 이끌었던 걸왕(桀王, ?∼기원전 1600?)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뜻에서였을 것이다. 탕왕은 걸왕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세숫대야에 새기고 날마다 마음을 다잡았을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몸뿐만 아니라 진부한 마음까지 닦아내고 정신적으로 자신을 새롭게 하기를 희망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에 만족하지 않고 늘 새로운 마음가짐과 자세를 갖고, 하루하루 꾸준히 실천하여 날로 발전하는 삶의 모습을 새겨가자.

『벽암록(碧巖錄)』은 중국 당나라 이후 불교 선승(禪僧)들이 전개한 대표적 선문답(禪問答)을 가려 뽑아 설명한 책이다. 이 책은 설두중현(雪竇重顯, 980∼1052) 선사(禪師)가 펴낸 『송고백칙(頌古百則)』에 원오극근(圓悟克勤, 1063∼1135) 선사가 또다시 문제 제기와 해석을 첨가한 것이다. 『벽암록』에 있는 선문답 한 가지를 보면, 운문선사[雲門禪師 :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가 묻는다. “그대들의 15일 이후를 말해 보라.” 운문선사가 스스로 답변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 날마다 좋은 날이다”(『벽암록』 제16칙) 매일매일 좋은 날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우리는 햇빛, 공기, 물, 땅, 나무, 모든 자연으로부터 끊임없이 은혜를 입고 산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스승, 함께 살아가는 친구의 은혜가 있다. 하루 세끼 음식도 농부들의 땀방울과 정성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감사함을 아는 사람과 감사함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 있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실낱같은 희망을 주던 사람이나, 설렘으로 가슴에 스며들었던 사람, 혹은 칼날에 베인 듯이 시린 상처만을 남겨 준 사람이라도, 떠나가는 마지막 모습은 아름다운 사람이 되도록 하자.

김형석 교수의 『100년 산책』의 「인생은 무엇을 남기고 가는가」에서 “‘짐승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라는 속담이 있다. 명예는 남는다는 생각으로, 살아있을 때는 명예욕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남는 것이 있다면 ‘감사하다’라고 하며 사랑을 나누었던 사람들과의 마음이다”라고 설파했다.

길은 찾는 게 아니라 만들어 간다. 누구도 두 길을 동시에 걸을 수는 없다.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 루쉰[魯迅(노신), 1881∼1936]은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다”고 했다. 프랭크 시내트라(Francis Albert Sinatra, 1915∼1998, 미국)의 ‘마이 웨이(My Way)’도 있다. 특히 삶의 벼랑 끝에 몰린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 미국)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의 종장은 늘 새롭게 위로를 준다.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나는 한숨을 쉬며 말하겠죠./ 까마득한 예전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로 나아갔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고.)

 

삶의 길 선택에 어찌 두 길뿐이랴! 삶의 길은 매 순간 선택이다. 자신이 선택한 대로 만들어 가고 그 선택으로 삶의 방향이 바뀐다. 시인은 말한다. 새는 날면서 뒤돌아보지 않으며, 바다는 고향이 없다고….

산에 가면 가끔 한적한 곳에 혼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을 본다. 그 꽃은 보는 사람이 없어도 홀로 맑은 향기를 풍기며 피고 진다. 아름다움이나 향기 다툼도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유유히 산다. 삶은 이 꽃처럼 ‘남과의 경쟁’이 아니고 ‘그냥 자신답게 사는 것’이다.

새해에는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희망과 행복을 열어주고, 밝음과 희망찬 한 해가 되게 하소서! 국운이 열리고 소망하는 일들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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