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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칼럼 죽은 뒤를 걱정한다
학고칼럼 죽은 뒤를 걱정한다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11.1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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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하고 지내십니까

 

김정호(전 진도문화원장)

나이 팔십이 넘어서면서는 고향인 진도를 향해 두 번 이상 간 일이 없다. 자식들의 성묘교육을 위해 추석과 설에야 겨우 두 번 조상들의 묘역을 찾아간다. 안가도 될 일이지만 행여 내가 죽은 뒤 내가 조상묘 곁에 묻힌다면 너희들도 일년에 두 번쯤은 찾아오라는 뜻이 담긴 위장성묘이다.

그때마다 나는 신세진 선후배들 만나고 싶은 생각이 굴 같지만 자식의 차량신세를 지는 터에 내욕심을 말할 수도 없다. 나는 숨을 거둔 뒤에 내 시신이 조상들 무덤 곁에 묻히길 바란다. 그렇지만 내 막내동생은 ‘형님이 묻힐 곳은 형님뜻이 아니라 아들 뜻에 달려있는데 무슨 죽은 뒤 욕심을 부리시느냐.’고 핀잔을 했다. 그렇다고 내가 숨을 거둔 뒤 내 아들이 내 뜻을 거역하고 제 편의대로 내 뜻을 거역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죽자마자 화장장에 내 육신을 싣고 가서 불태운 뒤 전혀 생전이연이 없던 사람들의 불태운 재를 모아둔 납골당에 내버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숨을 거둔 뒤 시신을 쓰레기처럼 내버린들 죽은 시신이 항거할 턱이 없지만 내 아들에게 그런 짓을 하지는 않도록 가르쳐 왔다는 확신을 가지고 산다. 이런 맏음이 없다면 나는 내일이라도 혼자 집을 나서서 자식이 모를 곳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다. 내 자식이 평생 아버지 유언을 어겼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는 것은 부모의 도리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문중에서 문중 기금으로 벌초하는 선조이외의 내 조상들을 모두 한 곳으로 모아 가족 공동묘지를 만들었다. 벌초비용도 감안해 될 수 있으면 부부는 봉분을 하나로 합했다. 비석은 없애고 봉분 앞 상석에 묻힌 분들의 생졸, 부모, 자식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비석은 세월이 흘러 넘어지면 그 위치는 확인할 수 없는 돌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나와 같은 연배의 지인중에서는 죽으면 불태운 뒤 강이나 바닷물에 뿌려부리라고 유언했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이가 더러 있다. 생각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구차스럽게 봉분묘를 해 보았자 바쁜 세상에 자식이 돌보지 않으면 고총처럼 흉물이 될 터이다. 그런 꼴을 당하느니 차라리 자식들 부담을 주지않도록 살았던 흔적은 물론 시시까지도 그 흔적을 없애버려야 한다는 논리이다.

나는 이런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미국에서 살던 알렉스헤밀리(1921~1992)란 사람은 360여 년전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미국에 팔려온 그의 조상을 찾아 《뿌리》라는 책을 써 그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감정은 같다. 조금이라도 버르장머리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으며 우리 조상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나는 내 자손이 얼마나 번질지는 상상할 수 없지만 《뿌리》의 작가같은 엉뚱한 후손도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미 손자가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하바드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나는 이 비좁고 좀스러운 나라에 돌아오지 말고 미국에서 살라고 말했다.

다만 내 자손중애서 선조에 관심이 많은 후손이 생길수도 있으므로 그 후손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너의 할아버지인 나의 살았던 흔적을 남기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의 현실은 점점 시골에 있는 무덤관리에 문제가 많다. 벌초가 어려운 과제이다. 언젠가는 벌초인력이 없어져 ㅜ토장 무덤들은 고총처럼 잡초숲이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화장한 뒤 납골당에 맡기거나 수목장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지만 현행 묘지법에 대한 자식이 없어서 신식장례문화를 따른다. 일반 공원묘지의 묘는 60년 이상 보전할 수가 없게 되어있다. 납골당이나 공원묘지의 납골함과 묘는 60년이 지나면 후손이 그 시신이나 납골함을 인수해가지 않으면 아무데나 내버리게 되어 있다. 국립묘지도 마찬가지다. 보훈대상이라 하여 국립묘지도 모시는 분들이 많지만 이 시신이나 납골도 60년이 지나면 버리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설묘지에 모시지않는 묘든 시신은 60년간 잘 모실 것 같지만 1백년 뒤 그분의 증손자가 증조부나 증조모의 사후 흔적을 찾으려 한다면 찾는 길이 없어진다.

인간도 다른 동물이나 마찬가지 생명체의 하나이다. 자신은 비록 죽지만 자식이나 후손도 대가 끊기지 말고 영속되기를 바라는 것이 본능이다. 죽은 뒤 자손들 걱정까지 하면서 죽을 거냐고 핀잔을 주지 말라. 그런 욕심마저 없다면 인생이 너무 허무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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