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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관 칼럼-‘다르다’와 ‘틀리다’ ‘다름’에 대한 존중 -
박영관 칼럼-‘다르다’와 ‘틀리다’ ‘다름’에 대한 존중 -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4.03.2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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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다'와 '틀리다'  다름에 대한존중

                                                                                                            박영관

산야가 푸르러지고 온갖 꽃들이 기지개를 켜며, 산새들은 때를 만난 듯 날갯짓이 분주하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가 피는데 이 아름다운 봄에도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 분노로 가득하다. 갑질이 판치고 흉악범죄가 기승을 부린다. 상대방이 자신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되면 무턱대고 공격한다. 날을 세우며 상대를 깎아내린다. 이런 현상은 곳곳에 팽배해 있다. 더구나 정치는 양극화가 더 극심하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분노로 대응한다.

사회 곳곳에 분노와 배척이 만연해져 간다. 특정인에 대한 분노만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향한 흉기 난동 범죄가 빈번하다. 맑은 심성을 가진 민족이 어쩌다 이렇게 분노의 씨를 뿌리게 되었을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본다.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생각이 같지 않으면 ‘다를 수도 있다’가 아니라 ‘틀렸다’고 거부한다. 나와 다르면 고개를 돌리고 조롱한다. 작은 것부터 공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다르지만 함께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다르다’에 대해 너무 냉담하다. ‘다름’을 인정하는 여유를 가져보자. 나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인정할 때 우리 사회가 더욱 안전하고 평화로운 터전이 된다.

‘다르다’와 ‘틀리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다르다’는 형용사로 ‘1.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 2. 보통의 것보다 두드러진 데가 있다’이다. ‘틀리다’는 동사로 ‘1.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 답이 틀리다. 2. 바라거나 하려는 일이 순조롭게 되지 못하다’이다. ‘다르다’의 반대말은 ‘같다’이다. ‘틀리다’의 반대말은 ‘맞다’이다.

어느 곳이나 여러 가지 갈등이 존재한다. 이념, 지역, 계층, 세대, 종교 등 다양한 이유로 우리는 고민한다. 드러나는 갈등의 원인을 보면 많은 부분이 생각의 차이에서 일어난다. 어느 곳에서나 생각의 차이는 있다. 그러나 이 생각의 차이를 ‘다름’이 아니라 ‘틀림’으로 받아들인다.

우리에게 고쳐지지 않는 언어습관이 있다. 우리는 수시로 ‘다르다’라는 단어와 ‘틀리다’라는 단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 ‘내 생각은 틀린데’처럼 ‘다르다’는 단어를 ‘틀리다’로 잘못 사용한다. ‘다르다’는 것은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다. 다르기에 논의할 수 있다. 공존이 가능한 영역이다. 반면에 ‘틀리다’는 것은 정오(正誤:옳음과 그름)나 정사(正邪:바른 일과 사악한 일)의 문제로 직면하게 된다. 틀리기 때문에 논쟁해야 하고 싸워야 하고 어느 한쪽은 지거나 배제되어야 한다.

정치, 사회적 갈등은 대화, 협의, 양보, 타협의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부합되지 않을 정도로 분열되었다.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생각들이 상충하여 다양한 갈등으로 이어진다. 갈등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갈등은 사회적인 목표를 명확하게 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대안과 창의적인 생각들을 찾아낼 수 있다. 갈등을 선순환시키기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감하며 존중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거나 존중하지 않으면 다툼으로 이어진다. ‘내 생각은 너와 다르다’며 자신 있게 말하고 ‘너의 좋은 생각도 존중한다’라는 말이 화두가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 사회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보장하며 다양과 포용의 문화가 따뜻하게 뿌리내리길 바란다.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은 소중한 존재다. 그중에서도 청소년들은 다음 세대를 이어갈 귀한 인재들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 문화가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어 안타깝다. ‘서로 틀린 것이 아니고 다름’을 인정하는 성숙한 시민사회가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선 학교와 가정교육이 우선해야 한다. ‘다르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확산시키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 변화와 공감대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격려하는 말과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표현으로 건강한 토의 문화를 정착시켜 가야 한다.

갈등을 중화할 수 있는 것은 ‘化(될 화, 모양이 바뀌다. 고쳐지다)’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의견을 듣고, 깊이 생각하고, 다름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나트륨(Na)과 염소(Cl)를 합하면 나트륨과 염소의 성질은 없어지고 전혀 다른 화합물인 소금(NaCl)이 만들어진다. 이처럼 서로 다른 생각이 만나 통합된다면 삶의 질은 더 윤택해질 수 있다.

견지망월(見指忘月)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본다”라는 말이다. 근본을 잊어버리고 피상적인 수단에 집착한다는 말이다. “如人以手 指月示人 彼人因指 當應看月 若復觀指 以爲月體(여인이수 지월시인 피인인지 당응간월 약부관지 이위월체). 어떤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켜 저 사람에게 보이거든, 저 사람이 손가락으로 인하여 달을 보아야 할 것이거늘 만약 손가락을 보고 달이라 한다면, 此人豈唯 亡失月輪 亦亡其指(차인기유 망실월륜 역망기지). 그 사람이 어찌 달만 잃은 것이리요. 손가락까지 잃은 것이다” 손가락인 줄만 알면 그걸 보고 달이라고 할 이유가 없는데, 손가락을 보고 달이라고 하니까 그 사람은 달도 모르고 손가락도 모른다는 얘기다. 불교경전 『능엄경(楞嚴經)』에서 유래하는데, 부처가 제자인 아난(ānanda, 阿難)에게 해준 말이다.

서로 ‘틀림’이 아닌 ‘다름’을 공감하는 마음의 눈으로, 배려하며 그 본질을 바로 보자. 그러면 산도 물도 바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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