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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진도향교 춘계 석전대제(釋奠大祭) 奉行(봉행奉行)
2024년 진도향교 춘계 석전대제(釋奠大祭) 奉行(봉행奉行)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4.03.23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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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무형 문화재 제85호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 실행 -

 

진도향교(전교 양동인)에서는 3월 14일 10시 30분부터 진도 향교 대성전에서 올리는 문묘 제향 의식의 하나인 춘계 석전대제(釋奠大祭)를 50여 명이 참석하여 봉행했다. 중요 무형 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된 석전대제는 성균관이나 지방 향교에서 공자를 비롯한 성현을 추모하기 위해 올리는 제사 의식이다. 석전(釋奠)이란 원래 산천이나 사당 그리고 학교에서 조상을 추모하기 위해 드리던 제사 의식을 말한다. 석전대제(釋奠大祭)는 매년 봄가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음력으로 매달 첫째 드는 정(丁)의 날]에 성균관을 위시한 전국 234개의 향교에서 일제히 실행되고 있으며, 중요 무형 문화제 제85호로 지정하여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석전은 모든 유교적 제사 의식의 규범이 되기도 하며, 가장 큰 제사라는 의미로 석전대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진도에서는 매년 음력 2월에 춘계 석전대제를 진도 향교에서 올리고 있는데, 유교 제사 문화를 보존 및 계승하는 데 있어서 그 문화적 가치가 높다. 석전과 유사한 제례 의식으로는 석채(釋菜)가 있다. 석채는 나물 종류만을 차려 제사를 올리는 단조로운 차림으로서 음악이 연주되지 않는 조촐한 의식이다. 이에 비해 석전은 희생(犧牲)과 폐백(幣帛), 그리고 합악(合樂)과 헌수(獻酬)가 있는 성대한 제사 의식이다.

 

진도 향교는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지방 국립 교육기관이다. 진도 향교는 1438년(세종 20) 향현사 부근에 설립 봉향되었다. 정유재란 때 소진되었다가 1667년(현종 8)에 재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대성전에는 5성 25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명륜당, 동무, 서무, 제관실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1985년 2월 25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2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전라남도 진도에는 고려시대에 향교가 세워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긴 하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고, 조선시대 때 복군(復郡)한 이후에야 문헌을 통해 내력을 확인할 수 있다. 진도향교는 1475년(성종 6)에 지금의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 동편 오리정 산자락에 남향으로 옮겨 다시 건립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구의 침입을 받아 소각 위험에 처하자, 당시의 향교장이었던 김희남 등에 의해 오성 십철의 위패만 북산 바위 밑 굴속에 임시 봉안했다. 인조 원년인 1623년에 진도읍성 남쪽에 새로 건물을 지어 봉안하고, 44년 후 또 이건하여 1667년(현종 8) 137대 이기형 군수 때 현 위치인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 275번지에 정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향교는 일반적으로 문묘(文廟)·명륜당(明倫堂)·재(齋)와 기타 부속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즉 교육공간으로서 강의실인 명륜당과 기숙사인 재가 있었고, 배향공간으로 공자와 중국·한국 출신의 현철(賢哲)들을 배향하는 대성전, 동무, 서무 등이 있었다. 진도 향교는 각 건물들이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기법으로 세워졌다. 비교적 경사가 심한 지형을 3단으로 정지(整地)한 후 대성전은 2m 높이의 막돌 축대 위에 조영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전퇴를 두지 않는 맞배집이다. 양박 공면에는 바람막이 판을 달았고 처마는 전면을 겹처마로, 추면은 홑처마로 되어 있다. 구조는 5량 구조이다. 명륜당은 정면 7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이다. 가구는 전, 후방 퇴주 사이에 안쪽으로 2개의 고주를 세우고 대량을 걸은 5량 형식이다.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집으로 3량 구조이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인 동재,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교직사로 이용되고 있는 서재와 내외삼문이 있다. 진도향교에 세워져 있는 비(碑)는 총 39기로, 경외에 이설된 것은 관제사 등 선정비 13기와 군수 등 선정비 13기가 있다. 경내에 이설된 것은 향교 전교 공적비 6기, 건물 중수 공로비 7기가 있다. 진도향교에서는 해마다 춘계, 추계 석전대제를 지내고 있다.

현재까지 586여 년 동안 끊이지 않고 문묘에 봄가을로 제향을 지내고 있다. 진도 향교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오성(五聖), 송조 이현(宋朝二賢), 아국 십팔 현종(我國十八賢從)의 25위 성현(聖賢) 위패를 모시고 봉행하고 있다. 석전의 의식 절차는 홀기(笏記)[집회 제례 등 의식에서 진행 순서를 낭독하게 되는 기록]에 의해 진행되며, 『국조오례의』의 규격을 원형으로 하고 있다. 봉행 절차는 초헌관(初獻官)이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 초헌관이 신위전에 첫 술잔을 올리고 대축이 축문을 읽는 초헌례,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아헌례, 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종헌례, 초헌관이 음복잔을 마시고 수조하는 의식인 음복례, 초헌관이 망료 위에서 축문과 폐백을 태우고 그 재를 땅에 묻는 의식인 망료례 순으로 진행된다. 집례 및 묘사(廟司)가 먼저 섬돌 아래에서 4배를 올린 뒤 손을 씻고 자기 위치에 선다. ① 창홀(唱笏): 집례가 홀기를 부르기 시작한다. ② 전폐례(奠幣禮): 폐백을 드리는 예 ③ 초헌례(初獻禮):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예 ④ 아헌례(亞獻禮):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예 ⑤ 종헌례(終獻禮): 마지막 술잔을 올리는 예 ⑥ 분헌례(分獻禮): 앞서 술잔을 올린 공자와 네 신위 이외에 종향(從享)되어 있는 사람에게 술잔을 드리는 예 ⑦ 음복례(飮福禮): 제사에 쓴 술과 음식을 먹는 예 ⑧ 망료례(望燎禮): 제사가 끝나서 축문을 불사르는 것을 지켜보는 예다. 알자가 초헌관을 인도하여 축문 사르는 곳으로 나아가면 대축이 폐백과 축문을 불사른다. 알자가 초헌관에게 예가 끝났음을 아뢰고 알자와 찬인이 헌관을 인도하여 물러감으로써 행사가 모두 끝난다. 진도 향교는 해마다 공자를 비롯한 유교의 성인과 성현들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음력 2월 상정일에 진도 유림과 군민 등이 참석해 진도 향교 대성전에서 춘계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진도 향교 양동인 전교는 금년부터 봉사 단체를 가입시켜 지역 문화를 이끌어 가겠다는 생각으로 먼저 전라남도 자원 봉사단체인 남도친구들과 지역의 봉사단체를 향교 회원으로 가입시켜, 지역사회의 인재를 양성하고 문화예술을 선도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유교 발전을 위해 생각해볼 문제는 향교 전교는 남성이 전통적으로 이어 오고 있는데 앞으로는 유연하게 생각하여 전교나 초헌관, 아헌관, 임원을 여성에게도 맡겨보자. 여성이 앞장선다면 유교문화가 역동성 있게 뿌리를 내리는 좋은 본보기가 되어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빅영관 편집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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